HR시스템은 사람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HR 시스템이 갖춰야 할 기준 - 철학
Human Resources. 직역하면 ‘인간 자원’이다. 즉 자원으로서의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 조합이다.
처음 HR이란 단어가 가진 뜻을 알게 되었을 때 공장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사용되는 사람들, 아니 인간이 떠오른 건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HR의 태생은 내가 상상하던 그 배경 속의 사회 시절부터 시작한다.
1893년, 어떤 단어의 탄생
‘human resource’라는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은 노동경제학자 존 R. 커먼스(John R. Commons)다. 1893년에 낸 저서 『부의 분배(The Distribution of Wealth)』에서였다. 다만 그는 이 표현을 던져놓았을 뿐, 하나의 개념으로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이 단어가 실제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10~20년대다. 노동자를 일종의 자본 자산(capital asset)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자리를 잡던 시기였다. 배경에는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있었다. 작업을 잘게 쪼개고, 동작을 측정하고, 표준을 정하고, 그 표준에 사람을 맞추는 방식.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사람은 공정의 한 단계였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의 ‘인적자원’ 개념이 문헌에 자리 잡은 것은 1958년 경제학자 E. 와이트 바케(E. Wight Bakke)의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그러니까 내가 HR이라는 단어에서 공장을 떠올린 건 착각이 아니었다. 그 단어는 정말로 공장에서 태어났다.
‘자원’이라는 단어에 숨은 전제
자원이라는 말에는 몇 가지 전제가 딸려 온다.
자원은 확보하는 것이다. 자원은 배치하는 것이다. 자원은 소모되고, 소모되면 교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원은 관리되는 대상이지 관리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 전제는 그 시대엔 꽤 잘 맞았다. 노동의 결과물이 균질했기 때문이다. 같은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혀도 나오는 물건은 비슷했다. 사람을 교체 가능한 단위로 보는 관점이 잔인하긴 해도 최소한 현실과 크게 어긋나지는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직무기술서를 들고 앉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의 차이가 몇 배씩 벌어지는 일이 흔하다. 코드 한 줄, 기획서 한 장, 고객과 나눈 대화 한 번이 조직의 방향을 바꾼다. 투입량과 산출량이 비례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은 ‘소모되는 자원’보다 ‘증폭되는 원천’에 가깝다.
용어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용어가 바뀐다.
HR 대신 People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구글이다. 2006년 구글에 합류한 라즐로 복(Laszlo Bock)에게 회사는 ‘VP of Human Resources’ 대신 ‘VP of People Operations’라는 직함을 제안했다. 이유는 다소 실용적이었다. 구글의 엔지니어들에게 HR은 행정과 관료의 언어로 읽혔던 반면, ‘Operations’는 실제로 일을 굴러가게 만들고 숫자를 다루는 조직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시작은 이름표였지만 결과는 이름표에 그치지 않았다. People Operations라는 명칭은 이후 여러 회사로 퍼졌고, ‘People Analytics’라는 용어도 여기서 나왔다. 스퀘어, 야후, 넥스트도어처럼 아예 ‘People Team’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도 생겼다.
물론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간판만 바꿔 달고 하는 일은 그대로인 조직이 적지 않다. 타당한 지적이다. 이름이 바뀐다고 철학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순서를 뒤집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철학이 바뀌면 이름은 반드시 바뀐다. 이름의 변화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지금 여기저기서 HR이라는 단어가 불편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단어가 품고 있던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신호다.
그래서, 시스템은
HR 시스템은 결국 조직이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를 코드로 옮긴 결과물이다. 화면 구성, 필드 이름, 권한 구조, 데이터 모델 하나하나가 전부 그 관점의 표현이다.
직원 정보를 ‘관리 대상 레코드’로 설계한 시스템과 ‘본인의 기록’으로 설계한 시스템은 다르게 생겼다. 평가를 ‘등급을 매겨 저장하는 절차’로 본 시스템과 ‘성장의 궤적을 남기는 기록’으로 본 시스템은 다르게 생겼다. 휴가를 ‘승인받아야 할 이탈’로 본 시스템과 ‘당연한 권리의 사용’으로 본 시스템은 버튼 하나부터 다르다.
기능은 나중에 얼마든지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은 나중에 붙일 수 없다. 처음부터 데이터 모델에 배어 있거나, 아예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그래서 HR 시스템이 갖춰야 할 첫 번째 기준은 기능 목록이 아니라 철학이다. 이 시스템은 사람을 무엇으로 보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시스템은 결국 1893년에 만들어진 단어의 전제를 아무 의심 없이 화면 위에 옮겨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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