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이 보는 숫자는 어디서 오는가
아무도 열지 않는 대시보드
의문의 시작
HR 대시보드를 만든 적이 있다.
요청은 위에서 내려왔다. 임원진이 인사팀에 이야기했고, 인사팀이 기획해서 개발 요청으로 넘어왔다. HR 솔루션에도 기본 통계는 들어 있었지만 우리 회사의 조직 구조나 관리 기준에 맞지 않아 별도로 만들어야 했다.
만든 지표는 이런 것들이었다. 그룹사 전체 인력 현황, 입·퇴사 현황, 조직도, 휴가 사용 현황, 핵심인재 평가 내역, 인건비와 인당 생산성.
추진 배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HR 데이터의 시각화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다.
지금 돌아보면, 그 문장이 지켜졌는지 잘 모르겠다.
첫 번째 균열 — 숫자가 서로 맞지 않았다
기술적인 실책부터 고백해야겠다.
각 지표는 HR 시스템에 쌓인 데이터를 꺼내와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지표마다 그 계산 방식을 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숫자를 한 번 정해놓고 각 화면에 나눠준 게 아니라, 화면마다 자기 방식으로 인원을 세고 있었다.
결과는 예상 가능하다. 전년 대비 인력 증감은 +10인데, 입·퇴사 현황의 숫자를 더해보면 그 값이 나오지 않는다. 기준일이 다르거나, 포함 범위가 다르거나, 어느 한쪽이 특정 고용 형태를 빼고 세고 있거나.
대시보드에서 이건 치명적이다. 숫자 하나가 틀렸다는 문제가 아니다. 한 화면 안에서 숫자끼리 어긋나면 그 화면 전체를 못 믿게 된다. 보는 사람은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방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균열 — 채워지지 않는 칸
핵심인재 평가 내역과 인건비, 인당 생산성. 이 세 지표는 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다.
HR 시스템이 그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담당자가 별도로 파일을 만들어 업로드해야 했다.
처음 몇 번은 올라왔다. 그다음부터는 늦어졌다. 담당자의 본업이 따로 있고, 이 업로드는 마감이 있는 일도 아니고, 안 올린다고 누가 즉시 문제 삼지도 않는다. 화면은 점점 오래된 숫자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번 오래된 숫자를 보여준 화면은 신뢰를 잃는다. 신뢰를 잃은 화면은 덜 열린다. 덜 열리는 화면은 더 늦게 갱신된다.
그런데 다 맞았다면 달라졌을까
여기까지는 만든 쪽의 문제다. 정합성은 설계를 고치면 되고, 업로드는 자동화하거나 연계하면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숫자가 전부 정확하고 매일 갱신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경영진은 그 화면을 보고 무엇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화면에 있는 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올해는 작년 대비 몇 명이 늘었다. 어느 직급에 몇 명이 분포한다. 연령대별로 어떻게 나뉜다. 성별 비율은 이렇다.
세분화는 충분했다. 연도별, 성별, 직급별, 연령대별로 잘게 쪼개져 있었다. 화면은 정교해 보였다.
그런데 이 숫자들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원이 열 명 늘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결론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40대가 몇 명이고 30대가 몇 명인지를 알면 어떤 판단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건 우리 회사의 상태를 설명하는 숫자이지, 무언가를 결정하게 만드는 숫자가 아니었다.
정작 궁금한 것은 화면에 없었다
회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돈다. 장기근속 휴가를 다녀온 사람이 얼마 뒤 퇴사하는 비율이 평소보다 높은 것 같다는 것.
어디까지나 느낌이다. 그런데 이건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느낌이다. 장기근속 휴가 사용 이력이 HR에 있고, 퇴사 이력도 HR에 있다. 두 데이터를 이어보면 사실인지 아닌지 나온다.
대시보드에는 그 지표가 없었다. 휴가 사용 현황이 있고 퇴사 현황이 있었지만, 둘은 각자의 화면에서 각자의 숫자로만 존재했다.
데이터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 질문이 지표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심인재 지표는 더 단적이었다. 화면에는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그게 전부다.
이 사람이 왜 핵심인재로 선정됐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최근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표시할 수 없었다. HR 시스템이 그 내용을 관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진이 그 화면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딱 하나였다. 핵심인재가 누구인지.
이름만 아는 것으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까.
대시보드는 조용히 잊혔다
사용 빈도는 서서히 떨어졌다. 지금은 거의 열리지 않는다.
누가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다. 대시보드가 안 쓰인다고 손해가 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아쉬운 사람도 없다. 그냥 조용히 목록의 아래로 내려갔다.
다만 이런 상태는 불안정하다. 어느 날 임원진이 다시 그 화면을 열어보자고 하면, 오래된 숫자와 어긋나는 값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순간 지적을 받는 건 담당자다. 만든 사람도, 요청한 사람도 아니고.
왜 그렇게 됐는가
대시보드는 아래에서 올라온 데이터를 요약한 화면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래에 쌓인 것이 얇으면 위에 보이는 것도 얇을 수밖에 없다.
이 시리즈에서 그동안 이야기한 것들이 여기서 한꺼번에 모인다.
임직원은 HR 시스템에서 거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요청하고, 조회하고, 제출할 뿐이다. 조직장은 결재선의 한 칸으로만 존재하고, 매일 비슷한 문서를 일괄승인으로 넘긴다. 데이터는 모듈 경계마다 끊겨서 휴가는 휴가대로, 퇴사는 퇴사대로 따로 쌓인다.
이런 상태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머릿수를 세는 일뿐이다. 입사 몇 명, 퇴사 몇 명, 어느 직급에 몇 명.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그것뿐이니 그것만 집계된다.
경영진에게 더 좋은 화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는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화면의 품질은 그 아래 쌓인 데이터의 품질을 넘어설 수 없다.
무엇이 필요한가
솔직히 말하면, 목표가 집계라면 지금 수준으로도 큰 무리는 없다. 인원이 몇 명이고 작년보다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정도 화면이면 충분하다.
문제는 우리가 보고서에 적었던 말이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효율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썼다.
의사결정을 위한 대시보드라면 그 아래에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평가를 받았고, 어떤 이유로 핵심인재가 됐고, 최근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숫자는 그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없는 것을 세어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콘텐츠는 어디서 오는가. 임직원의 생산 활동에서 온다.
두 번째 글에서 임직원이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시스템에 대해 썼다. 그때는 그것이 임직원 입장에서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그것은 경영진 입장에서도 손해였다. 볼 것이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시보드를 잘 만드는 일과 대시보드에 담을 것을 만드는 일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앞의 것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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