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장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버튼, 왜 결재만 남았을까?

조직장은 시스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특별’권한-조직장

대부분의 HR 시스템에는 ‘조직장’ 권한이 존재한다. 본부장, 팀장, 파트장, 공장장, 작업반장. 조직의 형태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달라지지만, 조직을 관리하는 직책자를 위한 권한 그룹이라는 점은 같다.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임직원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자리다. 그렇다면 이 권한으로 시스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의 하나다. 결재, 또는 승인.

임직원이 올린 기안 문서를 승인하고, 조직원의 목표를 확인하고 승인한다. 조직장 화면의 대부분은 이 행위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일괄승인이라는 버튼

결재와 승인 프로세스는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다. 어제 본 문서와 오늘 본 문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시스템에는 보통 ‘일괄승인’ 기능이 따라붙는다. 체크박스를 전체 선택하고 버튼 한 번을 누르면 끝난다.

결재 건 하나하나를 세세히 확인하는 것이 조직장의 역할이다. 원칙은 그렇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게 쉬운 일인가.

처음엔 한 건씩 열어보던 조직장도 매일 비슷한 문서를 마주하다 보면 결국 버튼 하나로 눈앞의 일을 치우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높은 확률로 사고가 난다.

장기 휴가 중이거나 휴직 중인 직원이 신청한 시간외 근무 수당이 언제나처럼 일괄승인되어 급여로 지급되는 것. 대표적인 사례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예 파악되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조직장이 본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맞다. 다만 조직장만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어제도 같은 내용, 오늘도 같은 내용인 문서를 매번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

기준과 철학을 가진 시스템이라면 여기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매일 비슷해 보이는 결재 문서라도 그 안의 값은 다르다. 휴직 상태인 직원의 초과근무, 평소 패턴을 크게 벗어난 시간, 마감 직전에 몰린 신청. 시스템이 이런 것들을 걸러내 먼저 보여준다면 조직장이 버튼을 누르는 부담은 한결 덜어진다.

건별로 다 보라고 요구하는 대신, 봐야 할 것을 골라주는 것. 이 정도가 지금의 HR 시스템이 조직장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에 가깝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도 결국 결재 이야기다.

조직장이 실제로 하는 일

지난 글에서 조직장은 승인 버튼이 하나 추가된 임직원이라고 썼다. 대부분의 HR 시스템에서 조직장 권한은 일반 임직원 기능 위에 결재 기능만 얹은 형태다.

실무에서 조직장은 그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한다.

조직원의 목표 달성을 독려하고, 성과가 나지 않는 직원과 상담을 한다. 주니어와의 간극을 좁히려 애쓰고, 시니어에게 조직의 방침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한다. 회사의 목표를 팀의 언어로 옮기고, 권한 범위 안에서 조직 개편도 신경 쓴다. 이번 달 회식 장소 선정에도, 팀원은 모르겠지만, 꽤 오래 고민한다.

이 중에 시스템 안에 있는 일이 몇 개인가.

왜 결재만 남았는가

이유는 앞의 글에서 이미 이야기한 적이 있다.

HR 시스템의 범위는 오랫동안 ‘처리해야 하는 일’을 기준으로 그어져 왔다. 결재와 승인은 그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누가 언제 무엇을 승인했는지는 반드시 남아야 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급여가 잘못 나갔을 때, 감사가 들어왔을 때, 분쟁이 생겼을 때. 결재 이력은 책임 소재를 가리는 증거가 된다.

반면 면담은 남길 의무가 없다. 코칭도, 조직 개편에 대한 고민도, 팀원의 상태를 살피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지 않으면 조직이 망가지지만, 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이나 회계가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직장 권한에는 결재만 들어왔다. 조직장이 하는 일 중 유일하게 증거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조직장을 리더로 본 설계가 아니다. 승인 절차상의 한 단계로 본 설계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할 것인가

여기서 조심할 부분이 있다.

조직장에게 더 많은 기능을 주자는 말은, 잘못 실행되면 조직원을 더 잘 들여다보는 도구를 주자는 말이 된다. 팀원의 근태 패턴, 협업 이력, 이탈 징후. 이런 것들을 대시보드로 만들어 조직장 화면에 붙이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건 첫 글에서 이야기했던 ‘자원으로서의 인간’이 한 단계 더 정교해진 형태일 뿐이다.

지난 글에서 세운 기준이 여기서도 쓰인다. 본인이 볼 수 있는가. 무엇이 왜 모이는지 아는가. 본인에게도 쓸모가 있는가.

조직장에게 보이는 것이 팀원에게도 보인다면 그건 대화의 재료가 된다. 조직장에게만 보인다면 그건 감시의 도구가 된다. 같은 데이터, 같은 화면인데 결과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조직장 기능의 방향은 ‘더 잘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표에 대한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화면, 지난 대화가 이어지는 기록, 조직장과 팀원이 같은 데이터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자리.

다시, 조직장은 누구인가

조직장은 시스템 안에서 오랫동안 결재선의 한 칸이었다. 문서가 지나가는 경로에 놓인 하나의 노드.

하지만 조직에서 사람에 관한 의사결정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인사 담당자가 아니라 조직장이다. 누구를 어디에 배치할지,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이 판단들은 대부분 시스템 밖에서 이루어지고, 시스템 안에는 결과만 결재 문서로 들어온다.

시스템이 조직장을 리더로 본다면 화면은 달라져야 한다. 승인을 기다리는 목록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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