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변경되는 평가,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HR 시스템 운영자가 본 평가 제도 개편
평가 제도는 왜 매년 조금씩 바뀌는가
평가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면 연초마다 비슷한 메일을 받는다. 올해 평가 제도가 일부 변경되었으니 시스템 반영을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대개 큰 변화는 아니다. 프로세스 전체를 뒤엎는 경우는 드물다. 등급 이름이 바뀌거나, 입력란이 하나 늘거나, 단계가 하나 추가되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일이 매년 반복된다. 몇 년째 지켜보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왜 매년 평가를 조금씩 고치고 있는가.
세 가지 변경, 세 가지 결과
지난 몇 년간 실제로 반영했던 변경들이다.
등급 표기를 바꿨다. S, A, B, C, D였던 다섯 단계를 탁월, 우수, 보통, 미흡, 주의로 바꾸고 등급마다 색을 입혔다. 알파벳보다 직관적인 단어가 낫고, 색이 붙으면 상태를 한눈에 알아본다는 판단이었다. 의도는 이해가 됐다.
결과는 어땠나. 화면은 분명 보기 좋아졌다. 다만 평가받는 사람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B가 보통이 되었을 뿐이다. 평가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그대로였다.
의견란을 늘렸다. 원래는 종합의견 한 칸이었는데, 성과와 역량에 각각 의견을 쓰도록 나눴다. 점수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니 근거를 남기자는 취지였다.
이건 의도 자체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과가 반대로 나왔다. 피평가자도 평가자도 쓸 칸이 늘어난 만큼 부담이 커졌고, 부담이 커지자 내용이 부실해졌다. 한 칸에 정성껏 쓰던 사람이 세 칸을 대충 채우게 됐다는 의견을 받았다.
단계를 늘렸다. 목표 등록, 중간 점검, 최종 평가의 3단계였던 것을 중간 점검을 둘로 나눠 상반기 점검과 하반기 점검으로 분리했다. 4단계가 된 것이다.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것보다 나눠서 자주 보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었을 테고, 그 판단 자체를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실행에서 문제가 생겼다. 단계마다 기간이 짧아졌고, 특히 하반기 점검과 최종 평가 사이가 너무 가까웠다. 두 단계에서 쓰는 내용이 거의 같아졌다. 같은 말을 두 번 쓰는 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변경은 임직원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통보됐다. 불만이 가장 컸던 것도 이 건이다.
그래서 무엇이 나아졌는가
솔직히 말하면 모른다.
변경 전후를 비교해서 분석한 적이 없다. 등급 표기를 바꾼 뒤 평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는지, 의견란을 늘린 뒤 평가 근거가 충실해졌는지, 단계를 나눈 뒤 중간 관리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효과를 측정하지 않는 변경은 다음 변경을 막지 못한다. 뭐가 나아졌는지 모르니 내년에 또 다른 곳을 고치게 된다.
임직원에게서 들은 반응은 대체로 하나였다.
아, 또 평가가 바뀌었구나.
무엇이 바뀌었는지가 아니라 바뀌었다는 사실만 남은 것이다. 변경의 내용은 전달되지 않고 변경의 사실만 전달된 셈이다.
고쳐지는 것은 언제나 양식이다
세 가지 변경을 놓고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전부 양식을 고친 것이다.
등급의 이름, 입력란의 개수, 단계의 수. 평가표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평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이 결과가 어디에 쓰이는지, 평가받는 사람이 무엇을 얻어가는지는 한 번도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 양식만 고칠까. 양식은 고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에서 바꾸면 되고, 바꾼 티가 나고, 올해 뭔가 개선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평가의 목적을 다시 정하는 일은 고치기 어렵다. 합의가 필요하고, 시간이 걸리고, 바꿔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매년 고칠 수 있는 것만 고치게 된다. 그리고 매년 고친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매년 불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등급 기준을 손대는 건 결과가 이상하다는 신호고, 의견란을 늘리는 건 점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신호다. 신호는 계속 오는데, 대응은 늘 양식 쪽에서 이루어진다.
시스템은 여기에 가담했다
이 대목에서 만든 쪽의 책임을 짚어야겠다.
평가 제도가 회사마다 다르고 자주 바뀌다 보니, 나는 평가표를 유연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설계했다. 화면을 미리 고정해두는 대신 설정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덕분에 직군별로 다른 평가표를 쓸 수 있게 됐고, 현업 만족도도 높았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었다. 바꾸기 쉬워지면 더 자주 바꾸게 된다.
예전이라면 평가표를 하나 바꾸는 데 개발이 필요했다. 비용이 들고 일정이 잡히니 자연스럽게 필터가 생긴다. 정말 필요한 변경인지 한 번 더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유연해진 시스템은 그 필터를 없앴다.
좋은 도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한 변경의 비용을 낮춰준 셈이 됐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평가받는 사람에게 평가란 무엇인가
두 번째 글에서 연말마다 빈 입력창 앞에 앉는 장면을 썼다. 1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나는 것만 적어 넣는 그 장면.
그 사람에게 평가는 제출해야 하는 서류다. 마감이 있고, 양식이 있고, 다 쓰면 끝난다. 등급 이름이 S에서 탁월로 바뀌어도, 의견란이 하나에서 셋으로 늘어도, 서류라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양식을 바꾸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양식을 아무리 다듬어도 서류가 서류가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매년 양식만 고치는 동안 평가는 계속 서류였고, 임직원의 반응이 “또 바뀌었구나”에서 더 나아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시 설계한다면
평가를 다시 설계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솔직히 아직 답을 모르겠다. 다만 답을 찾기 전에 물어야 할 질문은 조금 정리가 됐다.
평가받는 사람이 왜 평가받는지 알고 있는가. 제도가 바뀔 때마다 무엇이 왜 바뀌었는지 설명된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없었다.
평가 결과를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가. 등급만 통보되는 구조에서 납득은 어렵다. 근거를 남기자고 의견란을 늘렸지만, 그 의견이 본인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평가가 끝난 뒤에 무엇이 달라지는가. 등급이 보상으로 이어지는 것 외에, 평가받은 사람에게 남는 것이 있는가.
이 세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양식을 고치는 일은, 아마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아, 또 평가가 바뀌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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